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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대흠詩
지나온 것들이 내 안에 가득하다


산에 오르면 산으로 가득 차야 하건만
마음의 길은 자꾸 떠나온 쪽으로 뻗는다
세상 밖으로 가지 못한 바람 불고
추억은 소매치기처럼 떠오른다
사람의 말들이 이슬로 내리던 밤이 있었다 그 밤에
그 남자와 그 여자와 밤을 새웠다 나는
외로워지고 싶어 자꾸 지껄였다
그 여자는 가늘었다 가는 여자 가버린 여자
그 남자는 흘러갔다 흘러간 남자 홀로 간 남자
그 여자를 나의 길로 믿었던 적이 있었다
그 남자를 나의 길로 믿었던 적이 있었다
가는 것들이 나를 갉아 나는 자꾸 작아진다
구슬처럼 작아져 나는 왔던 길로
거슬러 가지 못한다 헉헉대며 굴러온 세월
오래 된 인간의 말들이 돌 되어
길을 막곤 했다
세상이 나보다 더럽게 보여
깨끗한 극약을 가지고 다닌 적이 있었다
저지르고 싶어 팍 무너지고 싶어
이 집은 그 집이 아니야 그 집은 어디 갔지?
나는 왜 자꾸 철거당하는 걸까?
산 깊어 길 없고 지나온 길들이 내 안에서
실타래처럼 풀린다 이 언덕은 미끄러워 자꾸
나를 넘어 뜨린다 감자처럼 궁구는 내 몸뚱이
세월은 비탈지구나 그러나
세상을 믿어 나는 괴로웠다
하루가 지나면 하루만큼의 상처가 남고
한 사람이 지나가면 한 사람만큼의 상처가 남는다
상처받을 수 있다는 건 씹다 뱉는 희망보다
얼마나 큰 선물인가 노래를 부르며
나는 걷는다
생의 뒷장을 넘기지 못하고 세월이여
불행으로 삶을 엮는 사람의 죽음은 불행인가 무엇이
지나온 길을 내 안에 묶어 두는가


시집『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』 中에서

죽기 좋은 시절
스물아홉에 자살은 못하고
한 권의 책을 묶는다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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